[경제적 자유 이야기 6화] 방구석 폐인, 2004년 겨울. 무작정 미국행 편도 티켓을 끊다.

예전처럼 디아블로 2를 열심히 하다가,

어느 순간 “이거 너무 지겹다” 싶어서

새로 나온 온라인 게임을 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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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중학교 친구 섭섭이는

우리 집에 와서

하루 종일 같이 게임만 하며 먹고 자고,

말 그대로 방구석 폐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맥스 폐인 모드’**였다.

머릿속 한쪽엔

“이러다 뭐 먹고 살지?” 하는

불안감이 있었어서 그랬는지,

어릴 때처럼 게임이 재밌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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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너 하나 놓고 신나나 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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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자동차에 휘발유 대신

신나를 넣고 다니는 게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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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문제아 시절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면서

‘에이, 그러다 인생 한 방에 날아가겠지?’ 하고

고개를 흔들며 다시 진지하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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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재미없는 게임 대신

대체 뭘 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 문득 미국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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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미국 가자. 그때 미국 출장 갔을 때 좋았잖아?

물론 그때는 회사가 호텔도, 차도, 기름도 다 대줬지만,

이번엔 내가 벌어서 하면 되지!”

​

그때만 해도

미국 비자를 따로 받아야 했던 시절이라,

퇴사한 지 한 달쯤 됐지만

직장인 신분으로 비자를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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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학연수 할 학교도 알아보고,

비행기표도 끊고,

미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연락해서

잠깐 묵을 곳도 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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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게 있으면 무조건 바로 하는 성격 덕분에,

마음을 정하자 모든 일이 순식간에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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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가는 것만 남은 상황.

미국 출장 갔다 와서 출장비 모은 걸로

기쁜 마음으로 샀던 애마,

아반떼 2.0 해치백 수동 모델도

몇 달 타지도 못하고 정리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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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엔 헬스장을 다니면서

미국에서 어떻게 될지 모를 내 인생을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기다렸다.

아니, 사실 기대보다는 두려움이 훨씬 컸다.

​

엄마는 내가

무작정 미국으로 도망치는 걸 눈치채셨는지,

걱정을 많이 하셨다.

​

자주 내게

“힘들면 언제든 돌아와.

작은 가게 하나 차리고 같이 일하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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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자존심 하나로 버티던 나는

항상 단호하게 말하곤 했다.

​

“엄마, 미국에서 거지가 되면 됐지,

성공하기 전엔 절대 안 돌아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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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불안과 초조함 속에서

몇 달이 지나가고,

드디어 출국 날이 다가왔다.

이혼해서 따로 살고 있던 아빠,

서울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던 형

그리고 형수, 엄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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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대구 팔공산에 모여

어색한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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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초등학교 2학년 때

가족끼리 자주 가던

오골계 백숙집에서 식사를 하고,

산책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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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다시 볼지 모를 상황 앞에

서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그 어색한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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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

2004년 12월 4일.

퇴사한지 5개월도 되지않아

미국행 편도 티켓을 들고 비행기에 올랐다.

​

이게 내 인생의 새로운 시작일지,

아니면 또 다른 모험의 끝일지,

그건 알 수 없었지만…

​

적어도 그때는

아무 대책 없었지만

세상이 날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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