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억 EP.8] 연봉 5만 불을 걷어찼다, 시급 16불짜리 창고 회사를 선택한 이유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그토록 외롭고 힘들던 시간도

조금씩 익숙해져 갔다.

학교에서는 외국인 친구들이 생겼고,

같이 밥을 먹으며 서툰 영어를 뱉었다.

선생님들과 단체로

댄스파티에도 갔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함께 놀 친구’**가 하나둘 생기니

낯선 땅이 아주 조금은

따뜻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거대한 불안감이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었다.

바로 **‘돈’**이다.

미국에 올 때 가져온

전 재산은 2천만 원.

한국에서 연봉 2,500만 원 남짓 받으며

알뜰히 모은 소중한 돈이었지만,

미국 물가는 자비가 없었다.

아껴 쓴다고 써도

학비, 월세, 차 할부금, 식비 등을 합치면

한 달에 2,000불 이상이 우습게 나갔다.

이대로라면

일 년도 채 버티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판이었다.

절박한 심정으로

예전 쌍쌍전자 미국 법인 출장 시절

인연이 있던 형님께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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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저 미국 왔습니다.”

형님은 흔쾌히 나를 반겨주셨고,

곧장 식사 자리가 마련되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내 모든 사정을 털어놓았다.

형님은 쌍쌍전자 미국 법인의

외주 업체 세 곳에

곧바로 연락을 넣어주셨다.

당시 본사 출신 수리사는

현지 기술자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실력이 뛰어났기에,

세 업체 모두 나를 잡으려 혈안이었다.

두 곳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회사였고,

나머지 한 곳은 백인 사장님의

신생 업체였다.

심지어 한 한국 회사의 이사님은

내 고등학교 선배님이기도 했다.

그들은 면접 자리에서

파격적인 제안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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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5만 달러 ($50,000).”

한국 굴지의 대기업

쌍쌍전자에서 받던 월급보다

두 배는 많은 금액이었다.

비록 잔업과 특근

불 보듯 뻔했지만,

당장 돈이 급한 나에겐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다른 한국 회사는

시급 16불을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간 백인 사장님의 회사

규모가 가장 작았다.

다른 곳들이 수백 명의 직원을 거느릴 때,

이곳은 채 50명도 되지 않는

신생 업체였다.

사장님은 인상이 좋아 보였지만,

법인 소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면접을 보는 듯한

미지근한 반응이었다.

제시한 조건도 시급 16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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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군데 면접을 모두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상식적으로는

연봉이 가장 높은

한국 회사를 택하는 게 맞았다.

그곳에 가면

당장의 돈 걱정은 끝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머리로는 연봉 높은 큰 회사를 가라고 하는데,

가슴은 자꾸 그 작고 보잘것없는

백인 사장님의 회사로 향했다.

왜 그런지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직감이었다.

결국 나는 내 안의 야수 같은

직감을 믿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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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이 모르겠다,

그냥 저 작은 회사로 가자!”

그때의 나는 그저 적당히 돈 벌면서

남는 시간에 공부나 해서,

나중에 병원 엑스레이 판독 자격증이나

따서 편하게 살 생각이었다.

비자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학교를 다니며

미친 듯이 영어 공부에 매달렸다.

그때 나는 정말 꿈에도 몰랐다.

나보다 딱 20살 많았던

그 백인 사장님이

내 인생 최고의 친구가 될 줄은.

수많은 밤을 함께 지새우며

고생하는 동지가 되고,

때로는 아버지처럼 기댈 언덕이 되어주며,

훗날 서로의 눈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운명 공동체가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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