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자유 이야기 7화] 달러 메뉴, 빨래방, 미국의 바닥 생활

유학생 신분으로 미국 땅을 밟았다.

하지만 내 주머니 속 사정은 여느 유학생들과 달랐다.

핸드폰 충전기를 만드는 3차 협력업체 생산라인,

오디오 회사 QC 검사원,

온몸에 기름칠을 해가며 버틴 병역 특례,

그리고 쌍쌍전자에서의 시간들…

무려 7년이었다.

그 긴 시간 동안 악착같이 모은 돈은

고작 2천만 원 남짓.

나는 이 돈을 쥐고 무작정 태평양을 건넜다.

현실은 냉혹했다.

한 달 어학원비만 650불.

가진 돈이 바닥나기 전에 살길을 찾아야 했기에,

나는 숨 쉬는 비용부터 줄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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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450불. 그 동네에서 가장 싼 아파트,

유일한 선택지였다.

출장으로 미국에 왔을 때는

회사 돈으로 좋은 주택이나 호텔에서 지냈으니

미국의 진짜 바닥을 알 리가 없었다.

신용도, 증명할 것도 없는

내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은 딱 그 수준이었던 거다.

지금도 그 아파트의 빨간 현관문이 기억난다.

나중에 알았지만 주인은

빨간색을 좋아하는 중국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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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하던 날,

현관문을 활짝 열어놓고 음악을 크게 튼 채

흰색 러닝셔츠 차림으로 껄렁하게 서 있던

흑인 형들을 보았다.

미국 물정을 전혀 몰랐던 나는

그게 마냥 ‘힙(Hip)’해 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위험한 동네였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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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문을 열자 눅눅한 공기가 훅 끼쳤다.

바닥에는 촌스러운 진파랑 카펫이 깔려 있었고,

조명은 침침했다.

샤워실 구석엔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침대 살 돈을 아끼려고

맨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우면

눅눅한 카펫의 감촉이 등을 찔렀고,

천장 너머로는 쥐들이 운동회를 하는지

타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세탁기 놓을 공간도,

수도 연결도 불가능해

일주일에 한 번 빨래 뭉치를 들고

빨래방을 가서 2-3시간을 낭비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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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니는 맥도날드 달러 메뉴 두 개면 충분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대중교통 하나 없는 곳이라 차는 필수였지만,

신용(Credit)이 없는 내게

할부 판매를 해주는 곳은 없었다.

다행히 현대차의 한인 본국 보증 프로그램 덕분에

한국에 계신 외삼촌의 보증을 받아

가장 싼 깡통 아반떼(Elantra)를 겨우 구했다.

출장 때와는 너무도 다른 낯설고 우중충한 풍경.

‘내가 왜 사서 고생을 하고 있나’ 하는

후회가 밀려오는 한 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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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숨통이 트이는 시간은 있었다.

바로 어학원 수업이었다.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을 만나고,

어릴 땐 죽어라 이해 안 되던 영어 문법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듣고 말하고 배우는 하루 4시간,

그 시간만큼은 행복했다.

하지만 수업이 끝나고

그 눅눅한 파란 카펫 위로 돌아오면

어김없이 우울감이 덮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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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마트에서 산 즉석카레와 참치 캔으로

대충 저녁을 때우며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밤.

어릴 적 아버지의 사업 부도,

부모님의 이혼,

지독했던 가난,

시골에서 형제끼리 버텨야 했던 시절…

웬만한 고생은 다 해봤다고 자부했는데,

이건 차원이 다른 게임이었다.

한인 마트에서 산

1달러짜리 즉석카레와

참치 캔으로 저녁을 때우던 그 밤.

눅눅한 카펫 위에서

천장의 쥐 소리를 들으며

나는 뼈저리게 깨달았다.

‘가난은 낭만이 아니다. 현실이다.’

쌍쌍전자 명함이 사라진 나에게 남은 건,

고작 2천만 원과 오기뿐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가장 밑바닥이었던 이 순간이

내 경제적 자유를 향한

진짜 엔진이 켜진 순간이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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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맵에서 캡쳐했다. 외벽을 페인트 칠했지만 문 색깔과 건물 중간의 문양은 여전히 빨간색이다]

다음 8번째 이야기에서는

서서히 미국 생활에 적응해가는

윈드라이더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https://blog.naver.com/windrider000/224115133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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