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자유 이야기 1화] 월 60만 원 공장 시다가 3년 만에 2천만 원을 모은 ‘절대 독기’의 기록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드디어 병역특례가 끝나는 11월 21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섬유공장에서 3년을 보낸 끝에, 마침내 이 시간을 끝낼 때가 된 것이다. 원래 군대에 가려고 했지만, IMF가 터지는 바람에 상황이 달라졌다. 지원만 하면 갈 수 있을 것 같았던 군대도, 대학생들에게 밀려 떨어지게 되었고, 결국 선택한 것이 병역특례였다.


월 60만 원, 잿빛 공장의 시다바리

​​전자기기기능사 자격증으로 취업했지만, 실제로 내가 맡은 일은 섬유회사에서 시다바리였다.

매일 10킬로그램이 넘는 위사(실타래)를 100개씩 손으로 나르며, 온몸에 기름을 묻히고 일했다. 직물 기계의 소음 때문에 귀마개를 끼고, 여름에는 40도를 넘는 고온 속에서 반바지에 상의는 아예 입지 않은 채 출근했다.

  • 3교대 근무에, 월급은 60만 원도 채 되지 않았고.
  • 일 년 내내 주말을 포함해 휴일은 딱 12일뿐이었다.
  • 기숙사엔 에어컨도 없었고, 식당 음식이 맛이 없어 매일 고추장에 밥을 비벼 먹으며 3년을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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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원짜리 빵과 2,000만 원짜리 독기

그래도 군대에 가지 않고 취직해서 일하는 만큼 뭔가 남는 게 있어야겠다고 생각해 월 50만 원씩 적금을 들었다. 3년 만기 2,000만 원짜리 적금이었다.

이 적금을 들기 위해 500원짜리 빵도 고민하고 사 먹었다. 디아블로2가 나왔을 때도, PC방에 가는 날을 정해놓고 다녔다. 물론 2년 차, 3년 차가 되어 가면서 월급이 조금씩 오르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80만 원도 안 되는 월급이었다.


눈물, 그리고 잿빛 인생

이렇게 힘든 3년을 보내며 얻은 건 강인한 정신력과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을 해냈다는 자신감, 그리고 무거운 물건을 너무 많이 들어 생긴 허리병이었다.

가끔씩 야간 근무가 끝난 아침, 온몸에 검은 기름이 묻은 채, 잠들기 전 배를 채우려고 슈퍼에 빵을 사러 갈 때, 학교 가는 대학생들을 보면 눈물이 날 때가 있었다. 그들이 정말 너무 부러웠다.

돈이 없어서 인문계 고등학교 대신 국립 공고를 갔고, 공장에 취업했던 내가 아닌, 대학생인 나를 상상하면서 점점 더 어두운 생각에 빠졌던 것 같다. 그 시절을 돌아보면, 마치 잿빛 인생을 살았던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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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그리고 땡땡전자 지원

힘들었던 병역특례 생활이 마침내 끝나자마자, 나는 바로 사표를 내고 퇴사했다. 비록 퇴사 후에 할 일이 뚜렷하지 않았지만, 복무가 끝나는 그날, 바로 회사를 떠나는 장면을 수없이 상상해왔기 때문에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퇴사 후에는 잠시 쉬면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다녔다. 그러던 중 땡땡전자가 수시채용을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원래 땡땡전자는 공고 출신이라도 고등학생 취업생만 채용했지만, 이번에는 추가로 인력을 뽑는다는 것이었다.

사실, 중학교 때까지는 나름대로 공부를 했었지만, 집안 사정으로 공고에 진학하면서 반항심에 고등학교 때는 공부를 거의 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내 생활기록부는 엉망이었다.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땡땡전자 지원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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