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그토록 외롭고 힘들던 시간도
조금씩 익숙해져 갔다.
학교에서는 외국인 친구들이 생겼고,
같이 밥을 먹으며 서툰 영어를 뱉었다.
선생님들과 단체로
댄스파티에도 갔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함께 놀 친구’**가 하나둘 생기니
낯선 땅이 아주 조금은
따뜻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거대한 불안감이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었다.
바로 **‘돈’**이다.
미국에 올 때 가져온
전 재산은 2천만 원.
한국에서 연봉 2,500만 원 남짓 받으며
알뜰히 모은 소중한 돈이었지만,
미국 물가는 자비가 없었다.
아껴 쓴다고 써도
학비, 월세, 차 할부금, 식비 등을 합치면
한 달에 2,000불 이상이 우습게 나갔다.
이대로라면
일 년도 채 버티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판이었다.
절박한 심정으로
예전 쌍쌍전자 미국 법인 출장 시절
인연이 있던 형님께 전화를 걸었다.
![[50억 EP.8] 연봉 5만 불을 걷어찼다, 시급 16불짜리 창고 회사를 선택한 이유 image](https://windriderlife.com/wp-content/uploads/2025/12/image-217.png)
“형님, 저 미국 왔습니다.”
형님은 흔쾌히 나를 반겨주셨고,
곧장 식사 자리가 마련되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내 모든 사정을 털어놓았다.
형님은 쌍쌍전자 미국 법인의
외주 업체 세 곳에
곧바로 연락을 넣어주셨다.
당시 본사 출신 수리사는
현지 기술자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실력이 뛰어났기에,
세 업체 모두 나를 잡으려 혈안이었다.
두 곳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회사였고,
나머지 한 곳은 백인 사장님의
신생 업체였다.
심지어 한 한국 회사의 이사님은
내 고등학교 선배님이기도 했다.
그들은 면접 자리에서
파격적인 제안을 던졌다.
![[50억 EP.8] 연봉 5만 불을 걷어찼다, 시급 16불짜리 창고 회사를 선택한 이유 image](https://windriderlife.com/wp-content/uploads/2025/12/image-218.png)
“연봉 5만 달러 ($50,000).”
한국 굴지의 대기업
쌍쌍전자에서 받던 월급보다
두 배는 많은 금액이었다.
비록 잔업과 특근이
불 보듯 뻔했지만,
당장 돈이 급한 나에겐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다른 한국 회사는
시급 16불을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간 백인 사장님의 회사는
규모가 가장 작았다.
다른 곳들이 수백 명의 직원을 거느릴 때,
이곳은 채 50명도 되지 않는
신생 업체였다.
사장님은 인상이 좋아 보였지만,
법인 소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면접을 보는 듯한
미지근한 반응이었다.
제시한 조건도 시급 16불이었다.
![[50억 EP.8] 연봉 5만 불을 걷어찼다, 시급 16불짜리 창고 회사를 선택한 이유 image](https://windriderlife.com/wp-content/uploads/2025/12/image-219.png)
세 군데 면접을 모두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상식적으로는
연봉이 가장 높은
한국 회사를 택하는 게 맞았다.
그곳에 가면
당장의 돈 걱정은 끝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머리로는 연봉 높은 큰 회사를 가라고 하는데,
가슴은 자꾸 그 작고 보잘것없는
백인 사장님의 회사로 향했다.
왜 그런지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직감이었다.
결국 나는 내 안의 야수 같은
직감을 믿기로 했다.
![[50억 EP.8] 연봉 5만 불을 걷어찼다, 시급 16불짜리 창고 회사를 선택한 이유 image](https://windriderlife.com/wp-content/uploads/2025/12/image-220.png)
“에라이 모르겠다,
그냥 저 작은 회사로 가자!”
그때의 나는 그저 적당히 돈 벌면서
남는 시간에 공부나 해서,
나중에 병원 엑스레이 판독 자격증이나
따서 편하게 살 생각이었다.
비자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학교를 다니며
미친 듯이 영어 공부에 매달렸다.
그때 나는 정말 꿈에도 몰랐다.
나보다 딱 20살 많았던
그 백인 사장님이
내 인생 최고의 친구가 될 줄은.
수많은 밤을 함께 지새우며
고생하는 동지가 되고,
때로는 아버지처럼 기댈 언덕이 되어주며,
훗날 서로의 눈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운명 공동체가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