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 Ep.2] 리플 120만 개… SEC가 덮친 ‘피의 크리스마스’

2018년 하락장이 시작된 어느 날,

나는 여전히 꿈속을 헤매고 있었다.

“하루아침에 리플(XRP)이 10달러(만 원) 간다.”

지금 들으면 지나가던 개가 웃을 소리지만,

그때 나는 진심이었다.

아니, **신앙(Faith)**이었다.

당시 나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살았다.

내 유튜브와 트위터 피드는

철저하게 **’알고리즘의 감옥’**이었다.

예능, 여행, 코미디 따위는 내 세상에 없었다.

내 화면을 채우는 건 오로지 리플, 가상화폐,

금융 시스템, 그리고 비트코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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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의 감옥에 갇혀버린 나]

매일 3~4시간씩 유튜브를 보고,

눈만 뜨면 습관적으로 트위터 아이콘을 눌렀다.

알고리즘은 기가 막히게

내가 듣고 싶은 말만 골라서 떠먹여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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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 희망회로 3대장과 차단 엔딩.]

리플 CEO **’빵형(브레드 갈링하우스)’**이

스위스 중앙은행이나 IMF 총재 앞에서

연설하는 영상을 보며 전율했고,

Bearableguy123, Alex Cobb,

Digital Asset Investor 같은…

지금의 ‘리플 고인물’들이 들으면 피식 웃을 그 이름들에

나는 내 인생을 걸고 있었다.

각종 수수께끼(Riddle)를 풀며 음모론을 확대 재생산했고,

매일 밤 나는 잠들기 전 억만장자가 되는 상상을 했다.

그때 내 지갑에는 무려

120만 개가 넘는 XRP가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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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RP에 미쳐서 몰빵하던 시절, 사진을 뒤지다가 겨우 찾았다. 저 시절 120만 개를 들고 있던 난 스스로를 ‘고래’라 불렀다. (사실은 뭣도 모르고 일확천금의 꿈만 꾸던 순진한 고래 ㅎㅎ)]

“이건 된다. 무조건 된다.”

미쳐도 단단히 미쳐 있었다.

하지만 그 광기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위안해 본다.

아주 비싼 수업료를 내고 세상을 배웠으니까.


하지만 현실의 차트는 내 믿음을 배신했다.

가격은 오를 듯하다가 처박히고,

반등하나 싶으면 지하실을 팠다.

사람 진을 쏙 빼놓는,

마치 심정지 환자 같은 무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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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고생해서 모은 전 재산을 투입한

평단 60센트짜리 120만 개의 리플은,

긴 하락장의 터널을 지나며 10센트까지 곤두박질쳤다.

수익률 -80%.

한화로 거의 8억이상 손해였다.

계좌를 볼 때마다 숨이 턱턱 막혔다.

시간이 지나자 열정적이던 유튜버들도,

트위터의 음모론자들도 하나둘 의미가 없어졌다.

나 역시 지쳐갔다.

“그래, 코인은 무슨… 일이나 열심히 해서 돈 벌자.”

그렇게 하락장 속에서 거의 3년을 버텼다.

내 120만 개의 리플은 기억 속에서

서서히 디지털 쓰레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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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했던 3년간의 하락장 모습이다.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다.]


그러던 2020년 여름.

죽었던 리플이 다시 꿈틀대기 시작했다.

너무 오랜만에 보는 그린캔들 기둥에

심장이 다시 뛰었다.

“드디어 때가 왔다!”

꺼져가던 희망 회로가 다시 풀가동되기 시작했다.

Swift를 리플이 먹어치우고,

IMF의 SDR(특별인출권)이 되며,

심지어 미국 연준의 FedNow에도 쓰일 거라는

소설을 썼다.

가격이 조금만 움직여도 혼자서 별의별 상상을 다 했다.

계산기를 두드리며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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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보야 기다려랏! ㅎㅎㅎ 김칫국 매일 마셨다.]

“1개에 10불만 가면… 120만 개니까 1,200만 불.

한국 돈으로 150억? 우히히히.”

3년을 고생하고도 정신을 못 차린 나는,

이미 머릿속에서 람보르기니의 주인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희망에 잔뜩 부풀어 있던 그해 겨울.

크리스마스를 맞아 나에게 처음 코인을 알려준

가장 친한 동네 IT 형네 가족과 함께

오클라호마 산속으로 캠핑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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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이 몰아칠 줄은 꿈에도 몰랐던, 평화로운 순간]

그 형 역시 리플에 전 재산을 몰빵한 상태였다.

우리는 동지였다.

가족들과 함께하는 소중한 추억,

맑은 공기, 그리고 타오르는 모닥불.

우리는 맥주를 마시며 다시 한번

**’부자의 꿈’**을 이야기했다.

“형, 이제 진짜 고생 끝이야. 곧 간다.”

기분 좋은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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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 뉴스가 터지기 10분 전, 마지막 행복]

스피커에선 캐럴이 흐르고,

식탁을 정리한 뒤 핑거푸드를 안주 삼아

남은 맥주를 들이켜던 그때였다.

습관처럼 켠 트위터에

믿을 수 없는 속보가 떴다.

[속보] SEC(미 증권거래위원회), 리플랩스 기소.

형과 나는 서로를 쳐다봤다.

“이거 무슨 개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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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급히 차트를 켰다.

별 움직임이 없었다.

“에이, 또 FUD(가짜뉴스)인가 보네.”

그동안 수없이 겪었던 루머겠거니 했다.

우리는 애써 무시하며 맥주잔을 들었다.

하지만 잠시 뒤,

핸드폰 화면 속 차트가 발작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거의 3년의 하락을 버티고,

이제야 전 재산을 잊고 살아보려던 찰나에 찾아온 반등.

그토록 기다렸던 불장이 코앞이었는데.

가족들과 가장 행복해야 할 크리스마스 여행지에서,

내 계좌에 핵폭탄이 떨어졌다.

가격은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실시간으로 내 돈 수억 원이 삭제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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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라호마에서 텍사스 집까지 3시간.

나는 운전대 옆에 차트를 띄워놓고 운전을 했다.

빨간색 긴 음봉이 뚝, 뚝 떨어졌다.

무자비했다.

운전하는 3시간 내내,

내 전 재산이, 내 120만 개의 꿈이

허공으로 증발하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봐야 했다.

그날의 운전은

내 인생에서 가장 끔찍하고 잔인한 드라이브였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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