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윈드라이더! 밥 먹고 내 자리로 와.”
수리 반장님의 호출이었다.
사실 나는 뭐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혹시 아무도 모르게 PDA 수리를
대충 했던 게 들통난 건가?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지나갔다.
그래도 일단 점심을 든든하게
먹고 반장님 자리로 갔다.
“야, 너 미국 비자 있냐?”
“아니요, 없습니다.”
“급행으로 지금 당장 만들어.”
“네? 저 여권도 없는데요…”
“선배들한테 물어보고 빨리 만들어.
너 미국에 수리 지원 가야 해.”
“제가요?”
“그래, 너 PDA 수리하잖아. 갔다 와.”
![[경제적 자유 이야기 4화] 입사 4개월 차, 미국으로 쫓겨나듯 갔다가 '대기업의 맛'을 알아버렸다 image](https://windriderlife.com/wp-content/uploads/2025/12/image-85-1024x559.png)
이렇게 나는 입사한 지 4개월 만에
비행기 한 번 타본 적도 없는 내가
미국으로 장기 출장을 가게 되었다.
출장비가 나오니 더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에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PDA 수리를 제대로 할 줄 모른다는 사실이
조금 걱정되긴 했지만,
미국 수리 수준이
한국보다 뒤처진다는 얘기를 들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경제적 자유 이야기 4화] 입사 4개월 차, 미국으로 쫓겨나듯 갔다가 '대기업의 맛'을 알아버렸다 image](https://windriderlife.com/wp-content/uploads/2025/12/image-86.png)
환경과 상황이 바뀌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남는 것 없이 보내는 경우가 많기에,
이번에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나를 포함해 총 다섯 명이 함께 갔는데,
모두 선배들이었다.
당시 쌍쌍전자 미국 법인은
아직 제대로 자리 잡지 않은 상태였다.
현지 직원들은 수리 기술이 부족하고,
시간만 때우다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갑자기 판매량이 늘어나면서
서비스 물량이 폭주하니
감당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경제적 자유 이야기 4화] 입사 4개월 차, 미국으로 쫓겨나듯 갔다가 '대기업의 맛'을 알아버렸다 image](https://windriderlife.com/wp-content/uploads/2025/12/image-87.png)
그래서 한국에서 수리사들을 파견해
몇 달 동안 쌓인 불량을 처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리고 이번 파견에
입사 4개월 차인 내가 포함된 것이다.
이 출장 경험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당시 나는 가난한 이혼 가정에서 자란
흙수저 중에 흙수저였다.
2004년, 시골 촌놈이
처음으로 미국 땅을 밟은 나이는
만 24살이었다.
처음에는 정신이 없었지만,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금방 적응했다.
회사에서 내게 준 미션은
하루에 100개를 수리하는 것.
![[경제적 자유 이야기 4화] 입사 4개월 차, 미국으로 쫓겨나듯 갔다가 '대기업의 맛'을 알아버렸다 image](https://windriderlife.com/wp-content/uploads/2025/12/image-88.png)
처음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하다 보니 오전 8시 출근해서
오후 2~3시면 끝낼 수 있었다.
역시 일은 요령이다.
쉬워 보이는 불량량들만 골라서
옆에 부품 교체만 담당하는 현지인을 앉히고,
하루 종일 같은 불량만 고치면 되었다.
선배들은 100개를 못 끝내서 힘들어했지만,
나는 항상 오후 2~3시면 모든 일을 끝내고
영어 공부를 했다.
눈치는 보였지만
해야 할 건 해야 했으니까.
![[경제적 자유 이야기 4화] 입사 4개월 차, 미국으로 쫓겨나듯 갔다가 '대기업의 맛'을 알아버렸다 image](https://windriderlife.com/wp-content/uploads/2025/12/image-89.png)
포레스트 검프나 오션스 일레븐 같은
영화를 녹음해 아이리버에 넣고 따라 하면서,
모르는 단어를 외우며
하루하루 조금씩 공부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꽤 어려운 영화였지만,
내가 좋아하는 영화였기에
꾸준히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미국은 프로틴 천국이었다.
별의별 건강식품을 다 먹어가며
운동도 하고, 영어 공부도 하고,
일도 쉽고,
100평짜리 미국 가정집에서 생활하며
생활비도 거의 들지 않았다.
출장비에, 렌트카에, 주유비까지 나오는 상황.
![[경제적 자유 이야기 4화] 입사 4개월 차, 미국으로 쫓겨나듯 갔다가 '대기업의 맛'을 알아버렸다 image](https://windriderlife.com/wp-content/uploads/2025/12/image-90.png)
명절마다
플로리다나 베가스로 여행까지 다녔다.
정말 천국이었다.
“이게 대기업이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말이다.
처음 몇 달의 출장 생활은
내 인생에서 가장 걱정 없고
평안한 시기로 기억된다.
이 생활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며
3개월이 지났다.
우리를 관리하던 주재원이
케미가 잘 맞았는지,
출장 연장 신청을 했다.
그 후 또 3개월을 연장해
거의 9개월 동안 미국에서
여유로운 생활을 만끽하고 있었다.
[💬 댓글 남겨주세요!]
여러분의 사회 초년생 시절은 어땠나요? 저처럼 생각지도 못하게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던 출장이나 사건이 있으셨나요? 아니면 “나도 그때 해외 한번 나가볼걸!” 하는 아쉬움이 있으신가요?
여러분의 20대, 혹은 잊지 못할 ‘꿀맛’ 같았던 시절의 이야기를 댓글로 들려주세요! 소통 환영합니다. 🙂